진정한 회개에 대해서 지난 시간 알아보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을 갉아먹는 죄들의 종류로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죄"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마르티아, 원죄였었죠. 이 시간 알아볼 것은 파랍토마, 즉 우리가 연약하여 짓는 자범죄의 종류들에 대해서 알아볼 것입니다. 이러한 죄들이 왜 위험한지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알아볼 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하시고 자신이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가 있다면 그 부분을 꼼꼼히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① 불평과 원망의 죄
② 정죄와 판단의 죄
③ 음란의 죄
④ 가십의 죄 (거짓말과 과장의 죄)
⑤ 세상을 사랑하는 죄
⑥ 교만과 허영의 죄
불평과 원망의 죄
불평과 원망의 죄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죄입니다.
② 성도의 구원의 여정에서 중도탈락하게 하는 대표적인 죄입니다.
③ 불평, 원망의 죄는 전염됩니다.
④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때, 불평과 원망의 죄가 파쇄됩니다.
첫 번째 특징,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죄이다." 성경을 보면 원망과 불평이 만연한 곳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을 할 때면 하나님의 심판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너무나도 싫어하시는 죄이기에 이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불평하고 원망을 내뱉는 입술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실 것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서 5:9)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서 1:15~16)
두 번째 특징, "성도의 구원의 여정에서 중도탈락하게 하는 대표적인 죄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말세에 우리를 깨우기 위한 본보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결국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아야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불평과 원망을 내뱉는 입술을 가진 자는 천국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10~11)
세 번째 특징, "불평, 원망의 죄는 전염된다." 원래 죄는 흘러가고 전염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 또한 흘러가고 전파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과 원망의 죄는 씨앗과 같아서 내가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 심겨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불평과 원망이 위험하고 무서운 죄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불평과 원망의 말이 누군가에게 심겨져 다른 사람들에게 불신을 심고, 의심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차오르는 원망과 불평의 말은 반드시 억눌러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교제할 때, 원망과 불평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경우 예수님의 피로 씻고 계속 내 안에서 그 원망과 불평의 말을 쳐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위로와 권면의 말로 영적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원망과 불평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구와 만나 교제하는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정말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자들과 교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수기 11:4)
네 번째 특징,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 불평을 내뱉었을 때,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 14:27)
원망과 불평은 사람에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사람과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권위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권위자가 신앙적으로 연약하며 우리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으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특징,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때, 불평과 원망의 죄가 파쇄된다." 이를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놀랍게도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요셉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의 모든 길을 계획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 가운데" 고난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정죄와 판단의 죄
정죄와 판단의 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신앙의 이름으로 짓기 쉬운 죄입니다.
②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③ 자기 안에 같은 죄가 있음을 드러냅니다.
④ 사탄의 자식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시선을 인식할 때, 정죄와 판단의 죄가 파쇄됩니다.
첫 번째 특징, "신앙의 이름으로 짓기 쉬운 죄이다." 인간은 신앙의 이름으로 잔인해지기 쉽습니다. 욥의 세 친구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욥이 가장 힘든 상황일 때, 욥의 세 친구들은 위로와 공감하지 않고 "분명히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욥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데 신앙 생활을 잘못하면 정죄와 판단만 늘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하며 결코 제대로 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욥기 42:7)
두 번째 특징, "누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 인간 중에는 그 누구도 정죄와 판단할 자격이 있는 자는 없습니다. 오직 정죄와 판단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죄가 있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죄 있다고 판단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7)
세 번째 특징, "자기 안에 같은 죄가 있음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죄에 대해 크게 반응하는 것은 본인이 그러한 죄를 짓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적 분석) 이것은 창세기의 노아 사건에 잘 보여줍니다. 노아가 술에 취한 채 잠들었을 때, 그것을 누설하고 드러낸 함(추측으로는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특히 가나안은 가나안 족속을 이루는데 그 가나안 족속의 가장 큰 죄는 "성욕"입니다. 결국 노아를 정죄한 가나안에게 "노아와 같은 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세기 9:21~22)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세기 9:25)
네 번째 특징, "사탄의 자식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고 정죄와 판단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나,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죄와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그는 밤낮 참소하는 자입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계시록 12:9~10)
즉, 판단과 정죄하는 것은 자신이 사탄의 자식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을 판단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잣대로 나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즉 긍휼이 없는 자에게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
다섯 번째 특징,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시선을 인식할 때, 정죄와 판단의 죄가 파쇄된다." 하나님 앞에 나는 너무나 죄가 많기에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즉, 은혜가 충만할수록 남을 판단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어떠한 지를 철저히 깨닫게 되면 절대로 남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3~5)
내가 얼마나 죄인 중의 괴수인지를 깨닫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갑시다.
음란의 죄
음란의 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원죄와 맞닥뜨려있는 죄입니다.
② 건강한 성욕(에로스)와 음란을 구분하는 방법
③ 자위와 포르노는 죄이다.
④ 영적 긴장감이 풀렸을 때 고개를 드는 대표적인 죄이다.
⑤ 성전된 우리의 육체에 짓는 죄이다.
⑥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질 때, 음란의 죄가 파쇄됩니다.
첫 번째 특징, "원죄와 맞닥뜨려있는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식욕을 주셨는데, 모든 것을 먹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선악과"를 통해 식욕에 제한을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제한을 넘어갔고 범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욕을 주셨는데, 성욕에도 한계를 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부 관계 안에서만 성적 관계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즉, 부부 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적인 행동은 모두 죄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지으신 한계를 인정하는 자만이 "부부 관계에서만 허락된 성관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두 번째 특징, "건강한 성욕(에로스)와 음란을 구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① 충동적인 것은 음란이다.
암논과 다말의 관계를 보면, 귀신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은 배다른 누이 다말을 강간하고, 그를 쫓아보냅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충동적인 성욕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음란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충동적인 음란을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게 하며, 아주 변덕스럽고 건강하지 못한 성욕으로 충동시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사무엘하 13:14~15)
- ② 기다리지 못하고 주체하지 못한 것은 음란이다.
민수기의 한 사건을 보면 귀신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으로 이에 참여한 백성의 수령들이 교수형에 처해지고 온 이스라엘이 슬퍼하고 있을 때, 한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의 여인과 간음을 합니다. 바알브올이 음행으로 인한 주님의 진노인데, 이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한 남성과 미디안 여인의 간음은 주님의 진노에 더욱 불을 지핍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그를 창으로 꿰뚫어 죽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주체하지 못하는 성욕이 주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민수기 25:6~8)
- ③ 존귀함과 거룩함 가운데 있는 것이 건강한 성욕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관계를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혼전 관계를 치룰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룻과 결혼을 한 후 건강한 부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배려할 줄 알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바로 건강한 성욕을 가진 사람입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룻기 3:12~14)
세 번째 특징, "자위와 포르노는 죄이다." 사실 "자위와 포르노"가 죄이다라고 성경에서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위가 죄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자위 행위를 짓고 싶기에 물어보는 심리"인 것입니다. 자위와 포르노가 죄인 이유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답해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사실 이 말씀 구절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위를 하고 포르노를 보며 음욕을 품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이 구절만으로 자위와 포르노는 음란의 죄를 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금 전 첫 번째 특징과 두 번째 특징을 보면서 알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범주는 오직 "부부 관계"뿐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린도전서 7:2~3)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설문조사 결과로 90%이상의 사람에게 자위 이후 오는 감정은 "수치심"과 "죄책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꼭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위 이후 오는 감정은 부정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 특징, "영적 긴장감이 풀렸을 때 고개를 드는 대표적인 죄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두 명을 꼽을 수 있는데 바로 "노아"와 "다윗"입니다. 사명을 마치고 마음이 편안할 때 슬며시 음란이 틈타기 시작합니다.
노아를 보면 방주를 짓고 의를 전파할 당시는 정말 좋은 상태의 신앙인이었으나, 대홍수 심판 이후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노아에게 음란이 틈탑니다. 그가 포도주에 취하여 나체 상태로 혼자 성적 흥분을 즐기는 죄를 즐깁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세기 9:20~21)
다윗 또한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로부터 벗어나 왕이 되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에게 편안함이 찾아옵니다. 그때 옥상에서 거닐다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그와 간음을 저지르게 됩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무엘하 11:2~4)
다섯 번째 특징, "성전된 우리의 육체에 짓는 죄이다." 내 몸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 몸은 주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17)
음란의 죄는 내 몸 안에 짓는 죄이며, 주님의 성전된 나의 몸을 더럽히는 추악한 죄입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고린도전서 6:18)
여섯 번째 특징,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질 때, 음란의 죄가 파쇄된다." 결국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십의 죄
가십의 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형제 사랑과 직관된 죄입니다.
② 거짓말의 죄와 직관된 죄입니다.
③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 때, 가십의 죄가 파쇄됩니다.
첫 번째 특징, "형제 사랑과 직관된 죄이다." 누군가의 죄나 허물을 보고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허물을 덮게 됩니다.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을 보면 이것이 확실히 대조됩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나, 함은 그 허물을 보고 떠벌립니다. 결국 가십은 형제 사랑과 직관된 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허물은 절대로 떠벌리지 않듯이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9:22~23)
두 번째 특징, "거짓말의 죄와 직관된 죄이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알리매", 이때 "알리메"라는 단어는 "나가드"라는 단어로 과장이 섞여서 이야기함을 의미합니다. 가십의 죄는 과장이 섞이게 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장황하게 해설하다가 과장이 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무익한 말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거짓말과 과장에 대한 것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2:36~37)
세 번째 특징,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 때, 가십의 죄가 파쇄된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며 주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허물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동체 내의 허물과 공동체 외의 허물에 따라 대처법이 달라집니다.
공동체 내의 허물은 다음 말씀과 같이 대처하면 됩니다. (즉, 여러 번 사랑으로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으면 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15~17)
공동체 내의 허물은 다음 말씀과 같이 대처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께 맡기고 신경쓰지 않으면 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1, 37:7~9)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1~2)
세상을 사랑하는 죄
세상을 사랑하는 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적 간음 죄입니다.
② 쾌락의 영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③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와 같습니다.
첫 번째 특징, "영적 간음 죄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간음은 실제로 음행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신약의 간음은 실제로 음행을 의미하기도 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거할 수 없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두 번째 특징, "쾌락의 영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과 자꾸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이 세상의 미디어는 어떻게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빼앗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1서 2:16)
세 번째 특징,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와 같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은 남편인 호세아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불륜을 하는 여자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녀에게 사랑을 주는 호세아의 모습은 사실 하나님의 마음이자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정말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그를 깨달아 알 때, 세상을 사랑하는 죄가 파쇄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호세아 3:1)
교만과 허영의 죄
교만과 허영의 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적 교만은 질서를 거부하는 죄입니다.
② 영적 허영은 영적 활동이나 성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③ 이세벨의 영과 같습니다.
첫 번째 특징, "영적 교만은 질서를 거부하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에 도전하며 영적인 질서를 깨뜨립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질서를 깨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는 "내가 말씀을 받아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올라섰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권위 위에 두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더욱 은혜를 받고 더욱 주님의 말씀을 받을수록 반드시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민수기 12:1~2)
두 번째 특징, "영적 허영은 영적 활동이나 성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한다." 영적인 허영에 빠지기 쉬운 유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 ① "모태신앙"입니다. Church Prince, Church Princess,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 앞에서 찬양하고 봉사하다가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신앙생활하며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경우입니다.
- ② "사회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영적인 부분에서 성취를 이루고자 할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성취를 이루고 남들 앞에 드러내어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허영이 있는 곳에는 결코 주님이 오롯이 영광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사도행전 5:1~2)
세 번째 특징, "이세벨의 영과 같다." 이는 영적 교만과 영적 허영이 합쳐진 것입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였으며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숭배의 절정을 이루며 아합 왕의 권위를 떨어뜨리며 자신의 왕국을 만든 사람입니다. 이세벨의 영은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책망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20)
이세벨의 영을 가진 사람은 보기에는 매우 인간적이고 인격적이며 희생적인 사랑, 섬김이 있습니다. 또한 엄청난 열심이 있고 영적으로 예민하고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그 모든 사랑과 섬김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깨버리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게 됩니다. 즉, 모든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데 쓰이지 않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데 쓰이게 됩니다. 결국, 주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영적 허영과 영적 교만 죄가 파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