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과정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기존의 정보와 지식을 문제해결에 잘 사용하도록 조직화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정신과정이며, 학습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기억을 실패한 경험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기억력을 사용하기에 이 또한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지금부터는 기억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억 과정
기억은 "약호화", "저장", "인출"이라는 세 가지 주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 약호화(Encoding): 기억부호를 형성하는 것
- 저장(Storage): 약호화된 정보를 기억 속에 유지
- 인출(Retrieval): 기억저장고에서 정보를 재생
과정 | 약호화(Encoding) | 저장(Storage) | 인출(Retrieval) |
정의 | 기억부호 형성, 의식적 노력 필요 | 약호화된 정보를 기억 속에 유지 | 기억저장고에서 정보 재생 |
컴퓨터 정보처리에 비유 | 키보드를 통해 자료 입력 | 하드디스크에 파일로 저장 | 파일을 불러와서 화면에 표시 |
기억이 성공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이 과정들이 필요하나, 각 단계들에 정보가 "어떻게" 들어가게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보가 기억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하위체계를 온전히 거처야하며, 이러한 정보처리적 접근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억이론이 "중다기억 모델"입니다.
중다기억 모델에 따르면, 유입되는 정보는 장기기억에 전이되기 전 일시적으로 감각저장고와 단기저장고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각기억(Sensory Memory):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원래의 감각양식으로 유지되며, 단기기억으로 전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단기기억의 정보는 시연하지 않으면 재빨리 소멸되며 정보를 20~30초동안 지속할 수 있다. 또한 $7 \pm 2$ unit으로 저장용량이 제한되어 있고, 단기기억고가 꽉 차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단기기억에서 처리 중인 정보는 새로운 정보로 치환된다.
단기기억의 정보는 "시연(Rehearsal)"을 하면, 그 이상 유지할 수 있다. 이때, 시연은 단기기억 장치 내의 정보를 재순환하는 "유지형 시연"과 장기기억으로 정보의 전이를 이루는 "정교형 시연"으로 나뉜다.
친숙한 자극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군집화(Chunking)"를 통해 단기 기억 내에서 정보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장기기억(Long-Term Memory)
장기기억의 정보는 오랫동안 유지되고 정보 저장용량도 무제한이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은 독립적이며 이를 보이는 증거로는 "계열위치효과(Serial Position Effect)"가 있다.
계열위치효과는 "목록의 처음 항목(초두성효과)과 목록의 끝 부분에 있는 항목(신근성효과)이 중간에 있는 항목보다 더 잘 회상된다는 것"이다.
초두성효과(Primary Effect)는 장기기억을 반영하고. 신근성효과(Recency Effect)는 단기기억을 반영한다.
기억 연구의 새로운 접근
위의 전통적 기억모델은 정보가 세 단계의 기억저장고를 계열적으로 거친다고 봅니다. 이는 인간의 기억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체계로 간주하기에 특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기억연구에서 기억은 계열적 처리뿐만 아니라 하위 단위가 동시에 병렬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작업기억
Baddeley는 전통적 단기기억 모형 대신 조금 더 능동적인 특성을 지닌 "작업기억(Working Memory)" 모형을 제안하였습니다.
- 음운고리(Phonological Loop): 정보를 청각적으로 부호화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 시공간 잡기장(Visuospatial Sketchpad): 시각적 심상과 공간 정보를 유지하고 조정한다.
- 중앙집행기(Central Executive):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정보량을 제한하고, 추리와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하위영역(음운고리, 시공간 잡기장)에 명령을 내리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장기기억 모듈
단기기억이 작업기억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듯, 장기기억 또한 몇 개의 하위 단위 혹은 모듈로 이루어집니다.
- 외현기억과 암묵기억
- 암묵기억(Implicit Memory): 의도적인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에서 파지가 나타난다. 무의식적이고 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외현기억(Explicit Memory): 이전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회상한다. 의도적이며 변인의 영향을 받는다.
- 중다기억체계: 기억체계는 서술기억과 절차기억으로 구분 가능하다.
- 서술기억체계(Declarative Memory System): 사실적이며 명시적인 기억을 다룬다. 외현기억을 처리한다.
- 절차기억체계(Procedural Memory System): 행위와 기술 및 조작에 관한 기억을 다룬다. 암묵기억을 처리한다.
- 의미기억과 일화기억: 서술기억은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으로 구분된다.
- 의미기억체계(Semantic Memory System): 정보를 학습한 시간과 무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 일화기억체계(Episodic Memory System):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있었던 "개인적인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 연합주의적 모델: 기억을 인련의 연결된 정보덩이의 표상체계로 간주한다.
- 조직화: 장기기억에서 매우 중요하며, 장기기억은 많은 조직망이 서로 중첩되어 뒤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의미망: 개념을 나타내는 노드(Node)와 개념을 연결짓는 통로(Pathway)로 구성되었으며, 이때 통로의 길이는 두 개념의 연합 수준을 나타낸다. 통로의 길이가 짧을수록 연합의 강도가 더 강하다. 의미망에서 단어와 연결된 통로를 따라 활성화가 확산된다. (Spreading Activation)
- 군집화: 유사하거나 서로 관련있는 항목끼리 기억하려는 경향이며, 단어를 조직화하여 제시하지 않아도 같은 범주까지 묶어 기억하려 한다.
장기기억으로부터의 회상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회상하기 쉽지만 때로는 계획적인 탐색과정이 필요합니다.
인출단서의 사용
"설단현상(Tip-of-the-Tongue Phenomenon)"란 알고 있는 것을 일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저장되어 있으나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설단현상은 확실한 인출 실패입니다. 그러나 인출단서가 있는 경우 회상이 가능합니다. 정보의 인출은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맥락
"맥락(Context)"이란 학습대상이 되는 항목 외에 약호화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말합니다. 어떤 사건을 회상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원래 맥락이 많이 제시될수록 기억이 더 잘됩니다. "인출맥락과 학습맥락이 유사할수록 기억이 더 잘 되는 것"입니다.
정서와 인출
"상태의존적 기억(State-Dependent Memory)"이란 원래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 경험한 기분을 재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호화 과정이 정서와 인출 시의 정서상태가 동일할 경우 회상이 증가합니다.
"정서일치효과(Mood-Congruence Effect)"란 현재의 정서와 일치하는 정보에 대해 기억이 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처리 수준
기억의 처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자극 정보의 구조적 & 물리적 속성을 분석하는 "얕은 처리(Shallow Level)"와 의미적 속성을 분석하는 "깊은 처리(Deep Level)"로 분류됩니다. 파상적으로 처리된 정보는 쉽게 망각되지만, 의미적 수준에서 처리된 정보는 오래 유지됩니다.
도식과 스크립트
"도식(Schema)"이란 특정 대상 또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지식의 조직화입니다. 도식과 일치하면 더 잘 기억됩니다.
"스크립트(Script)"란 도식의 한 종류로,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상황에 대한 도식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기억의 재구성
장기기억에서 어떤 정보를 인출할 때 과거를 고스란히 그대로 회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과거를 재구성하여 회상합니다. 즉, 정보 인출 시 자신의 기대, 신념, 도식 등에 맞게 정보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재구성에 대한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삽입 또는 생략을 통하여 기억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성이 보입니다.
법정에서의 기억: 목격자 진술
기억이 재구성된다는 것은 "재구성적 오류"와 "구성적 오류"를 구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문제에도 큰 문제를 가집니다. 검사나 경찰이 던진 질문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아동 목격자인 경우 기억의 신뢰도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망각
망각을 정확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망각량"과 "파지량"을 측정해야 합니다. 이때, "파지(Retention)"란 자료가 유지(기억)되는 것을 말합니다. 망각을 측정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회상(Recall)", "재인(Recognition)", "재학습(Relearning)"입니다.
- 회상 검사: 아무런 단서 없이 정답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
- 재인 검사: 선택지에서 이미 학습한 정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
- 재학습 검사: 어떤 정보를 두 번째 학습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나 노력이 얼마나 절약되었는가를 측정하는 것
결국, 망각이 일어나는 이유들은 무엇일까요? 망각의 원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효율적인 약호화: 정보를 약호화하지 못했기에 나타나는 의사망각은 주의결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 소멸 이론(Decay Theory): 기억은 비영구적이기 때문에 망각이 일어난다. 즉, 시간 경과에 따라 기억 흔적이 쇠퇴한다. 그런데 잠은 망각량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잠을 자는 실험 참가자가 잠을 자지 않은 실험 참가자보다 망각량이 적었다.)
- 간섭 이론(Interference Theory): 정보가 서로 경합을 벌이기 때문에 망각이 일어난다. 검사자극과 간섭자극의 유사성은 망각량에 비례한다.
- 역행 간섭: 새로운 학습이 이전 학습을 간섭하는 것 (경제학 공부 -> 심리학 공부 -> 경제학 시험)
- 순행 간섭: 이전의 학습이 새로운 학습을 간섭하는 것 (심리학 공부 -> 경제학 공부 -> 경제학 시험)
- 인출 실패: 약호화 당시의 단서와 일치하는 인출 단서가 기억에 도움이 된다. "동기화된 망각"은 의도적으로 기억을 억압한 결과이다. 결국, 약호화 당시의 처리유형과 파지방법이 요구하는 처리 유형이 서로 다를 경우 인출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억향상법
기억술(Mnemonics)은 기억을 증진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기억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 충분한 시연: 시연이 많을수록 파지가 증가하며, 정보 중요도가 가장 높을 때 반복효과가 가장 크다. 자료를 완전히 숙달한 후에도 계속해서 시연하는 "과잉학습"도 중요하다.
- 분산학습(Distributed Practice): 연습기간이 상당히 길 때 더 효과적이다.
- 간섭의 최소화: 간섭은 망각의 주요한 원인이다. 유사한 자료라도 날짜를 달리 하여 학습할 때 간섭이 덜 발생한다.
- 깊은 처리: 기계적 반복보다 자료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고, 특히 자료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 전이적합형 처리: 문제 해결을 해야할 땐 사실지향적 처리보다 문제지향적 처리가 더 효과적이다. 검사 유형에 따라 학습 방법을 다르게 하는 것이 좋다.
- 언어적 약호화: 각 단어의 머릿말을 단서로 만드는 "이합법", 단어의 머릿말로 새 단어를 만드는 "두문자법", 단어들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 구성" 등이 있다.
- 시각적 심상 형성: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기억해야 할 항목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심상을 형성하는 "연결법", 잘 아는 장소에 대해 심상을 형성하고 기억해야 할 항목을 여러 장소에 배치하여 상상하는 "장소법", 구체적인 단어와 추상적인 단어를 연결하고 그 구체적인 단어에 대해 심상을 형성하는 "핵심단어법"이 있다.
- 정보의 조직화: 정보를 조직화하면 파지가 훨씬 증가하고 자료의 개요를 파악하면 자료를 위계적으로 조직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 약호화 증진: 약호화 과정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기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자극을 약호화하며 다른 정보와 관련 짓는 "정교화", 어떤 단어를 기억할 때 그 단어의 시각적 상을 형성하는 "시각적 심상", 주어진 자료에 대해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참조적 약호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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