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 이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뜻 그대로 해석한다면 "Good News 복된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복된 소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여러분은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으신가요? 어떤 분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떤 분은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이야기'이다. 등등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요. 다 맞습니다. 사실 복음은 한 단어로 또는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그 안의 내포된 뜻이 너무나 방대합니다. 지금부터 대략 10개의 포스팅에 걸쳐 복음이란 무엇이며, 복음을 통해 우리가 꺠닫고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할 때 사용하는 문장입니다. 이는 당연한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이 문장은 복음을 가장 축약시킨 내용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이렇게 축약시킨다면 2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구원을 죽음 이후 사건으로 한정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영과 혼과 육의 완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② 구원을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온 세상에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 있으십니다.
1번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중 "죽음 이후에 이뤄지는 구원"에 대해 언급하신 경우는 단 한 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회개하였을 때입니다. 그 강도는 더 이상 살 수 있는 소망이 없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 이후의 삶 뿐이었습니다. 그떄 주님께서는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자주 말씀하신 "삶 속에서 이뤄지는 구원"은 삭개오의 회개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9~10)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말은 결국 구원이 죽음 이후로 한정되는 사건이 아닌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하며 영과 혼과 육이 완전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2번 내용입니다. 개인적인 구원, 즉 "나의 변화, 나의 회복" 또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관심이 있으신 것은 개인적 차원의 구원 개념을 넘어선 "온 세상에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사야서 11장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사야 11:9~10)
즉,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개념에 있어 아주 작은 부분집합일 뿐입니다.
창조와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나오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고 좋아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6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주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때, "심히"라는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그 뜻을 완전히 번역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특히 사람을 만드신 후, 그 기쁨을 주님께서 이기지 못하실 정도로 너무 좋아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사랑과 기쁨을 경험하게 하고자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셨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교제하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성막과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관계는 무너져버렸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다시 인간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셨는데, 그 매개체는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을 원어로 보면 "미쉬칸(히)", Dwelling Place, 처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싶으셨기에 그들이 성막을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애굽기 25:8)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
즉, 성막을 짓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시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십니다.
절기와 아버지의 마음
출애굽 기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절기"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따라서 주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십니다.
구속사의 모든 사건은 절기에 맞춰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의 절기"를 매우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이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링크를 눌러 확인해보세요)
- 유월절: 예수님께서 죽으심
- 무교절: 예수님께서 장사되어 무덤에 계심
- 초실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심
- 오순절: 성령님께서 강림하심
- 나팔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
- 속죄절: 이스라엘의 회개가 있을 것
- 초막절: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
예수님과 아버지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나오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조금 전에 본 성막의 원어, "미쉬칸(히)"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살아있는 성막"으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며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십자가와 아버지의 마음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시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드러납니다. 그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켜서까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휘장"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찢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마가복음 15:37~38)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해 아담의 죄 이후 막혀버린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성령과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10일 후,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신 것 또한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과의 동행, 동거를 위하여 성령님께서 같이 오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16~17)
역사의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창조 사건, 에수님의 성육신, 성령 강림 사건 등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어하신다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어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31~32)
즉, 역사의 결론은 "하나님과 우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신부가 예수님과 결혼해서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요한계시록 22:1~3)
결국 주님께서는 "나"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결론이며, 성경의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NAw-6lua5k0&t=3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