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성막의 여러가지 구성 요소 중, 바깥에서 본 성막의 모습, 성막의 울타리, 성막의 기둥, 성막의 문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성막에 대해서 열심히 탐구하고 알아가며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성막의 외양
성막의 바깥에서 보이는 것은 세마포로 이루어진 흰색의 울타리와 황갈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덮개입니다. 바깥에서 보이는 성막의 모습은 아주 볼품없고 평범한 모습입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이사야 53:2~3)
그러나 겉보기에 볼품 없는 성막 안의 모습은 겉 모습과 다릅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금이 입혀진 엄청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소 안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 성막 바깥에서는 안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들었기에 성소의 아름다운 모습은 밖에서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성막을 둘러싼 울타리는 높이가 5규빗, 약 2.5m로 사람의 키보다 높기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막의 밖에서는 성막 내부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3)
이러한 성막의 외양 디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비슷합니다. 겉보기에는 예수님은 그렇게 매력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그 안에서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게 되고,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느끼게 됩니다.
성막의 울타리와 기둥
성막의 울타리
성막의 울타리는 동쪽, 서쪽이 50규빗(약 25m), 남쪽, 북쪽이 100규빗(약 50m)의 직사각형의 세마포 휘장으로 세워졌고 세마포 휘장을 세우기 위해 동쪽, 서쪽에 각 10개, 남쪽, 북쪽에 각 20개의 놋 기둥을 세웠다.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13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출애굽기 27:9~13)
모래 먼지가 많은 광야에서 흰 세마포로 바깥 울타리를 만드는 것은 실용적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세마포로 바깥 울타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세마포는 "거룩함", "정결함", "구별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성막 바깥과 안을 구별하였다는 것이며 이것은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8)
성막의 기둥
그리고 흰 세마포를 세우기 위한 성막의 기둥이 세워졌습니다. 이 기둥의 재료는 아카시아 나무(조각목)였으며 그리고 이 기둥에 놋을 입혀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으로 만든 기둥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고 이 조각목 기둥에 놋을 입힌 것이 상징한 것은 "구원", "속죄"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속죄의 은혜가 입혀져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성결의 은혜를 받고 죄와 구별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막의 울타리의 메세지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21:9)
근데 울타리의 기둥은 조각목에 놋을 입혀서 만든 것입니다. 반면, 성소의 기둥과 지성소의 기둥은 똑같은 울타리의 기둥에 금을 입혀 만든 것입니다. 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놋에서 금으로 바뀌는 것,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조각못)를 통하여 속죄의 은혜(놋)에서 하나님의 영광(금)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깥 뜰에서 성소, 지성소로 깊이 들어가는 것과 같이 우리는 속죄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후 성결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은혜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문
성막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성막으로 들어오는 문이 상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성막의 문의 색깔
성막의 문은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 실(흰색)" 이렇게 4가지의 색깔로 만들어집니다. 성막의 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듯, 성막의 문을 이루는 네 가지의 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상징합니다. 또한 복음서는 4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4권의 책을 통하여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다르고 이 4권을 다 읽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출애굽기 27:16)
먼저, 청색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문에 청색을 입히라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 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출애굽기 24:10)
자색은 "왕권"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문에 자색을 입히라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예수에게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마가복음 15:17)
홍색은 "고난"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문에 홍색을 입히라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는 종이심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흰색은 "성결함, 거룩함"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문에 흰색을 입히라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신 성품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성막의 문의 위치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첫 임재의 장소는 "에덴 동산"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막과 에덴 동산은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막의 문은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에덴 동산, 구약에서 의미하는 동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3:24)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창세기 4:16)
이것은 일부 예시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서쪽에서 동쪽"은 하나님을 떠나가는 방향입니다. 반대로 "동쪽에서 서쪽"은 하나님을 다시 찾는 방향입니다. 성막 또한 동쪽의 문으로 들어와서 서쪽으로 갈 수록 지성소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막의 문이 동쪽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상징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단 하나 뿐인 성막의 문
또한, 성막의 문은 단 한 개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넓은 문에서 좁은 문으로의 변화
성막의 문은 넓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지방도 없으며 울타리(너비 동서 25m, 남북 50m)에 비하여 구조상 넓은 문(너비 10m)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문이 넓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열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7)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그런데, 성막의 문(너비 10m, 20규빗)은 넓으나 성소의 문(너비 5m, 10규빗)과 지성소의 문(너비 5m, 10규빗)은 좁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쉽지만 그에 더 나아가 성소로 들어가고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만큼 성화의 단계,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여는 성막의 문
이 성막의 문에는 문지기가 없고 자기가 스스로 열고 들어오는 문입니다. 결국 문은 자신이 직접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주셨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에 자신의 의지적이고 인격적인 고백을 통해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참고자료 (래퍼런스)
https://www.youtube.com/watch?v=OuI3mSCZf9o